위기를 기회로 만든 용기와 지혜의 여인

위기를 기회로 만든 용기와 지혜의 여인

 

그녀는 자신의 운명의 개척자였다. 그녀는 ‘진생천’이라는 동양적 격언을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깨달았다. 즉 의무를 다해 하늘의 뜻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천국은 그녀에게 신이었고, 또는 가톨릭 신자로서 신이었다. 그녀는 매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 이유는 지중해 물처럼 분명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손을 뻗은 것은 신이었다. 그녀는 그 손을 잡고 전 세계 복음의 메시지를 충실하게 깨달았다.

인생에서 중요한 두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이었고 결혼이었다. 그녀는 교묘하게 이 두 번의 시도를 기회로 바꾸었다. 그녀가 여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를 잘 만나 공짜로 먹었던 꿀떡이 아니라 늑대처럼 광활한 황야를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피비린내 나는 전략공작의 결과였다.

 

1451년 4월 22일, 이베리아 반도 중부의 거대한 왕국 카스티야 궁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웃 포르투갈 출신의 이사벨 여왕은 공주 이름을 따서 이사벨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그 소식은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미 왕국은 부패했고 왕은 약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카스티야 왕국은 부패의 온상인 루나 수상의 손에 썩어 있었고, 왕은 수상의 그늘 아래 병들어 있었다. 이사벨 여왕은 후안 2세를 대신해 죽은 전처 엔리케 왕자와 함께 두 살 때 정치적 격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루나를 처형했다.

루나 수상이 죽자 후안 2세가 병든 닭처럼 병에 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 이사벨 왕비는 공주의 동생 알폰소 왕자를 왕의 품에 안았지만, 왕은 아이가 돌로 치기도 전에 죽었다. 왕의 죽음은 너무 초라해서 백성도 귀족도 장례식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고, 엔리케 왕자도 왕이 되었다. 왕이 된 엔리케는 왕위를 유지하려는 본심을 잃었다. 그는 이사벨 왕자의 총명함에 놀랐다. 언젠가 자신을 제거하고 알폰소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그는 이사벨 공주가 세 살이었던 해에 황후와 두 형제를 궁전에서 아레발이라는 시골 마을로 쫓아낸다.

아마도 왕이 세 사람을 죽이지 못한 것은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한 신의 배려였을 테지만, 마치 태후가 아닌 한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것 같았다. 믿음직한 아들의 배반과 천자의 삶은 그녀를 이성을 잃게 했다. 태후는 정치적으로 매우 훌륭한 여자였지만 포르투갈의 공주였으며 가난한 생활을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사이코패스가 되었다. 이사벨은 미쳐버린 동생과 어머니를 돌보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궁중의 생활이 어떤지도 모르는 젊은 이사벨은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에서 자신의 삶의 힘을 보고 배웠다. 그래도 그는 공주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 먼 왕국을 사랑하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고 눈을 뜨면 어머니와 동생을 돌보면서 카톨릭 신자가 된다. 그리고 천주교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삶의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태후가 현실화되자 정치적 불안이 없었던 엔리케는 이사벨과 알폰소를 돌보기 시작했다. 이자벨 공주는 왕국의 큰 자산이기 때문에 그것을 관리했을지도 모른다. 엔리케는 이사벨을 연구하기 위해 살라만카 대학의 유명한 교수를 아레발로로 보냈다. 왕명으로 이사벨의 스승이 된 안나는 화려한 궁정생활이나 천만 원보다 공주에게 더 소중한 존재였다. 그녀는 이사벨에게 읽고, 쓰고, 생각하고, 게다가 신앙을 깊게 하도록 가르쳤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여전히 카스티야 왕국은 가난했지만 이사벨은 아름답고 강인하게 변한다.

엔리케는 아버지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귀족들의 횡포로 국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백성들은 괴로움을 당했지만 젊은 왕은 망나니일 뿐이었다. 게다가 왕비의 아버지가 왕이 아닌 왕비와 가까운 벨트란 데 라 쿠에바 남작이라는 소문도 떠돌았다. 엔리케는 매우 가난한 남자였기 때문에 그 여자를 멀리했다. 귀족들은 이 지저분한 왕가를 대신하기 위해 이사벨 공주의 동생 알폰소를 왕으로 추대했고, 내전이 발발했다. 그것은 3년이라는 긴 전쟁이었다. 이사벨 공주는 격동의 시대에 현명하게 생각하고 판단하였다. 그녀는 자진해서 왕실에 들어갔다.

그는 그가 왕국을 이끌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알폰소 왕자는 갑자기 죽었다. 이때 이사벨은 15살의 숙녀였다. 그녀는 지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 후 강력한 힘을 키웠다. 오빠의 죽음으로 내전의 원인이 사라지자 그녀는 말했다. “엔리케 왕이 군림하는 동안에는 아무도 왕위에 오를 수 없소. 그 지위는 선왕과 신이 내린 권리다. 한 나라에 두 명의 왕이 있을 수 없다. 엔리케 왕을 지키겠다.” 엔리케는 이사벨의 탁월한 현실 선택으로 불안감이 풀렸고, 왕국은 내전을 중단시켰다.

그녀의 운명을 바꾼 것은 아라곤의 왕자 페르난도 2세와의 만남이었다. 엔리케 왕은 이자벨 공주와 포르투갈이나 프랑스의 강력한 왕국 중 한 나라에 결혼할 계획이었다. 강대국들과 유대를 맺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책략이었다. 그러나 이사벨은 가톨릭 선교사를 파견하여 각국의 왕과 왕자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설교자들은 그대로 보고했다.

프랑스의 신랑 후보자들은 약하고 무능했으며 포르투갈의 왕은 마흔이 넘었으며 아라곤의 페르난도는 성격과 능력을 갖춘 멋진 청년이었다. 그녀는 페르난도를 선택했다. 그러나 왕은 이사벨에게 포르투갈과 결혼하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운명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페르난도에게 먼저 편지를 써서 상황을 설명하고 청혼했다. 이사벨 공주에 대해 모두 알고 있던 페르난도 왕자는 군대를 불러들여 그녀와 결혼했다. 푸치니 오페라의 줄거리 같다. 이 모임은 역사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마침내 죽을 때까지 처음에는 변하지 않는 사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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