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는 자애로운 어머니로, 누군가에는 파괴자의 얼굴로

누군가에는 자애로운 어머니로, 누군가에는 파괴자의 얼굴로

 

인디라 간디는 자애로운 어머니, 가난과 뒷길의 혼돈, 아시안게임 개최, 초호화 호텔 건설, 방글라데시 독립 지원, 시크교도 탄압 등의 이미지에서 구축함 칼리호의 여신으로 인도를 통치했다.

인도 인디라 간디의 시대에 관한 책 “동방 전략”에서 인도는 녹슨 쇠냄새와 향신료 냄새, 잘 익은 파파야의 달콤한 냄새, 제단의 향연, 남자 머리의 겨드랑이 냄새, 썩은 강물, 마리화나 연기, 대낮의 냄새로 묘사된다. 그래도 거리가 조금 더 견디기 쉬운 이유는 비 때문이다. 이에 앞서 인도 건국 아버지이자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는 저서 세계사(The World History)에서 인도의 사계절은 겨울, 봄, 여름, 우기라고 썼다. 감옥에 있는 아버지, 감옥에 있는 어머니, 감옥에 있는 할아버지의 교육, 그리고 외로운 어린 시절로 무엇보다도 비가 많이 오는 인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도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되기 훨씬 전에 그녀의 운명을 인도와 함께 했다. 그녀의 아버지 네루는 북인도 카슈미르 지역에 뿌리를 둔 부유한 브라만 계급의 후손이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그것은 인도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 쪽으로 기울어진 전형적인 식민지 엘리트들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네루는 ‘잘리안왈라 사건’을 보면서 마하트마 간디가 이끄는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잘리아왈라 사건은 1919년 봄, 영국군이 인도의 잘리아왈라 공원에서 비폭력 시위자들을 사살한 사건이다. 갑작스런 영국군의 총격으로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우물에 뛰어들어 인파에 휩쓸려 무려 4000여 명이 숨졌다. 이 비극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미래에 인도를 이끌어갈 네루를 민족주의적으로 각성시킨 것이다. 그는 간디를 존경하고 따랐으며, 그를 “억압된 계급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위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 노선은 달랐다. 간디는 점진적이고 평화로운 투쟁을 추구했고, 네루는 혁명적인 사회 개혁을 주창했다. 그러나 결국 인도의 독립으로 이어졌다.

네루는 1916년 어머니 사자처럼 마음이 강한 카밀라와 결혼하고, 1917년 외동딸 인디라를 낳는다. 어린 시절 인디라의 별명은 작은 인도다. 그녀는 12살 때부터 이미 몽키 여단이라는 청년 단체를 결성해 독립운동에 참여한 정치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네루의 세계사서 첫 장에는 ’13번째 생일에 인디라에게’라고 쓰여 있다. 네루는 니니의 감옥에 갇혀 있는데, 무슨 선물을 줄 수 있을까? 내가 그에게 물으니,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처음 쟌느 다르크를 읽었을 때 얼마나 황홀했니? 그녀처럼 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억누르지 못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보통 사람들은 항상 영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빵과 버터, 아이들의 보살핌과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가 무르익어 사람들이 큰 목표를 세우고 확신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도 영웅이 되고 역사는 움직이기 시작하고 큰 전환점이 온다. 우리가 인도의 투사가 되려면 인도의 명예를 깊이 소중히 여겨야 한다.”

정말 멋진 생일 카드다. 그리고 다시 네루가 보낸 편지가 있어 우리는 인디라의 어린 시절을 짐작할 수 있다. “설날 아침이 되어서야 네 어미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것은 나에게 행복한 새해 선물이었다. 물론 이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 어머니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만족하신다고 믿는다. 하지만 혼자 남게 되면 외로울까? 2주에 한 번씩 어머니를 만날 수 있고 2주에 한 번 나를 만날 수 있으니 나와 어머니 사이에 전령이 될 것이다. 넌 아난드바완에 있고, 네 엄마는 말라카 교도소에 있고, 난 니니 교도소에 있어. 우리는 가끔 서로를 초조하게 그리워한다. 우리 셋이 한 자리에서 다시 만날 날을 생각해 보자!” 역시 대단한 인사다.

그녀는 영국 옥스포드에서 공부했지만, 21살 때부터 영국을 상대로 한 인도 독립 운동에 아버지를 따라왔다. 1947년 인도가 마침내 독립하고 네루가 초대 총리가 되었을 때 그의 연설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른다. “이제 한밤의 종소리가 울리면 세상은 잠을 자지만 인도는 자유를 가지고 깨어난다. 이제 우리의 임무는 가난과 무지와 불평등을 종식시키고 모두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내는 것이다.” 독립을 하루 앞둔 1947년 8월 14일 밤이었다.

인디라 간디는 당시 두 아이의 어머니였고, 먼 훗날 두 아들의 운명도 어머니의 운명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정치적 후계자인 아들 사니는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수상이 된 또 다른 아들 라지브 간디는 타밀 지역에서 유세 도중 타밀 타이거라는 단체의 일원이 꽃다발 안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모두의 눈에서 눈물을 훔치는 것도 네루 가문의 혈육에 대한 부탁이었을지도 모른다.

네루는 17년간 재임했으며, 대개 선거제도를 도입하여 민주주의 확립에 기여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인도식 ‘혼합경제’는 국민을 가난과 무지에서 해방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배고픈 민주주의’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네루에 대한 인디언들의 지지는 1964년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녀의 딸 인디라 간디는 세 번째 수상이 되었다. 재임 중 인디라 간디는? 그녀는 준사회주의 정책을 썼고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지지하면서 파키스탄과 갈등을 빚었다. 중국과의 국경분쟁을 계기로 아시안게임을 열고 아그니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다. 당시 인도 서민들의 삶은 동양 불가사의에 묘사된 생활과 똑같았다. 오베로이 그랜드 호텔과 극장, 명품 가게와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선 형형색색의 네루 거리에서 거지들이 기어가고 악취가 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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